2015. 7. 27. 22:16 음악

Drenge; 소년들.

 

1.
새벽 세시에 비를 존나 많이 맞으면서 본 이 밴드의 공연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관객은 내 앞쪽으로 얼추 백 명 안쪽이었던 것 같았는데 다들 내일이 없는것 처럼 열광적으로 놀았고, 공연은 정해진 시간을 10분 넘겨서 끝났다. 이런 밴드를 대체 왜 새벽 두시 오십분에, 그렇게 큰 무대에 세운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공연 가기 전에 정규 앨범 두 장을 쭉 들었다. 수록곡은 대부분 3분 내외. 2분이 안되는 곡들도 많다. 느낌은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 첫 앨범은 큰 감흥이 없었고, 두번째 앨범에서 발전과 변화가 느껴졌다. 그래서 어느정도 기대를 갖고 새벽까지 기다린 것이다. 그놈의 비만 안왔어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봤을텐데 ...

첫 곡이 시작되는 순간 앨범이 주지 못한 에너지가 바로 전달됐다. 그리고 어떤음악을 지향하는지 알 수 있었다. 짧고, 단순하고, 반복적이고, 시끄럽고, 고유한 매력이 있는 멜로디. 모두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소리가 크다는건 내게 굉장히 중요한 미덕이다. 무대로 가는 길이 멀었는데 한밤중이라 그런지 멀리서도 귀에 소리가 바로 꽂혔다. 펜더 기타 (텔레캐스터, 재즈마스터) 와 펜더 앰프 두 개인데 퍼지함이 잘 살아있는 멋진 톤이었다. 낡은 느낌의 코러스 이펙트가 인상적이다. 보컬의 목소리는 기타보다는 얌전하고 조금은 둔하게 느껴지지만 약점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물론 가장 중요한건 곡이다. 2인조로 시작했기 때문인지 블랙 키스에 많이 비교되는데 그렇게 끈적한 블루스 락의 느낌은 아니다. (드렌지는 영국 밴드인데 어쩌면 영국/미국의 블루스 전통 차이일 수도 있겠다.) 오히려 스트레이트하고 거친 느낌이 조금 더 강하다. 멜로디가 굉장히 참신하거나 파격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예상을 살짝 비틀어주는 정도의 재밌는 부분들은 여러 개 있다. 족히 수십년을 이어온 장르와 트리오 편성의 전통을 뒤로하고, 그 제약 안에서 이런 곡들을 쓰는 사람들이 계속 나온다는 사실은 인류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게 한다. 혹은 개러지 락의 미래라거나.

2.

밴드 이름 Drenge는 덴마크어로 소년들이라는 뜻이다. 도그마 영화들 (라스 폰 트리에의 그 도그마) 과 덴마크 문화를 좋아하는데 발음이 더러워서 따왔다고 한다. 원래 스물을 갓 넘긴 형제 둘이 기타-드럼 편성으로 결성했는데 최근 투어에서는 베이시스트와 함께 다닌다. 형제들의 이름은 Eoin, Rory Loveless. 그냥 성씨일 뿐인건 알지만... 좋은 이름이다.

2011년 결성, 2012년부터 슬슬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는데, 결정적으로 영국의 노동당 간부 한 명이 보직을 사임하면서 뜬금없이 '쩌는 밴드 보고싶으면 드렌지 추천드림' 하고 적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일화가 있다. 정작 형제들은 유명세를 달가워하지 않고 음악으로 성공하는데는 관심이 없다고 얘기한다. 어쨌든 악틱 멍키스, 블랙 키스에 비교되는 등 언론의 조명과 기대를 많이 받고 있다. 대성해서 한국에 자주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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